중국어 마당
学汉语
일상중국어·혼인
日常汉语·婚姻
동료의 이혼 소문에 관한 내용입니다.
수빈: 告诉我你的地址吧。
(gào sù wǒ nǐ de dì zhǐ ba.)
주소 좀 알려줘.
경희: 什么事?
(shén me shì?)
무슨 일인데?
수빈: 再过几天我就结婚了。
(zài guò jǐ tiān wǒ jiù jié hūn le.)
며칠만 더 있으면 결혼이야.
想给你发喜帖。
(xiǎng gěi nǐ fā xǐ tiě.)
청첩장을 보내려고.
경희: 祝贺你!
(zhù hè nǐ!)
축하해!
수빈: 你会来吗?
(nǐ huì lái ma?)
올 거니?
경희: 当然了。我和老公一起去。
(dāng rán le. wǒ hé lǎo gōng yī qǐ qù.)
그럼. 남편이랑 같이 갈께
真想看你穿婚纱的样子。
(zhēn xiǎng kàn nǐ chuān hūn shā de yàng zi.)
난 정말 네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수빈: 我还给相浩发了请柬,他过得不错吧?
(wǒ hái gěi xiāng hào fā le qǐng jiǎn, tā guò de bù cuò ba?)
상호한테 청첩장을 보냈어,
쟤 잘 지냈지?
경희: 听说他在闹离婚。
(tīng shuō tā zài nào lí hūn.)
쟤 이혼 준비 중이래.
수빈: 怎么突然提出离婚?
(zěn me tū rán tí chū lí hūn?)
왜 갑자기 이혼이야?
我觉得太不可思议了。
(wǒ jué de tài bù kě sī yì le.)
정말 믿어지지 않네.
他们夫妻感情挺好的啊。
(tā men fū qī gǎn qíng tǐng hǎo de a.)
쟤네 부부사이 좋은데.
겨희: 我也搞不清楚。
(wǒ yě gǎo bù qīng chǔ.)
나도 잘 모르겠어.
听说相浩的公司前几天倒闭了。
(tīng shuō xiāng hào de gōng sī qián jǐ tiān dǎo bì le.)
며칠전에 상호의 회사가 판산한대.
수빈: 真是家家有本难念的经!
(zhēn shì jiā jiā yǒu běn nán niàn de jīng!)
다들 살기가 어렵네
재밌는 한자 공부
咬文嚼字
“三”和“四”为什么在成语中遭贬?
고사성어에서 ‘三’과 ‘四’는 왜 부정적 의미로 쓰일까?
挑三拣四(tiāo sān jiǎn sì; 이것저것 좋은 것만 골라내다), 丢三落四(diū sān là sì; 실수가 많거나 건망증이 심하다), 推三阻四(tuī sān zǔ sì; 여러 가지 핑계 대어 회피하다) 등… 독자 여러분은 눈치챘는가? ‘三’과 ‘四’가 들어간 성어는 모두 부정적인 의미이다. 고사성어에서 왜 이들은 비난의 역할을 맡고 있을까?
고사성어 사전을 들여다보면 三은 四뿐만 아니라, 다른 숫자와 만나도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훨씬 더 많이 쓰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三长两短(sān cháng liǎng duǎn; 뜻밖의 재난이나 변고)’, ‘三心二意(sān xīn èr yì; 마음 속으로 이리저리 망설이며 일관되지 못하다)’. ‘三天打鱼,两天晒网(sān tiān dǎ yú,liǎng tiān shài wǎng; 사흘간 고기를 잡고 이틀간 그물을 말리다; 공부나 일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지 못하다)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三’에만 문제가 있는 것일까?
‘三长两短’의 내력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三长两短’은 화재, 사고를 뜻한다. 왜냐하면 관을 짜는 재료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기(礼记)>에서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옛날에는 관에 못을 박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긴 고무줄 같은 것으로 관 바닥과 뚜껑을 횡으로 3번, 종으로 2번 함께 묶었다. 횡의 판자가 길고, 종의 판자가 짧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三长两短’의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다. 어떤 이는 三长은 관의 바닥과 옆, 뚜껑을 가리키고, 两短은 관의 앞뒤 두 군데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 현상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지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보자.
중국 전통 문화에서 ‘三’은 특수한 숫자로, 종종 숫자의 극한, 즉 끝까지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도덕경(道德经)>에서 “一生二,二生三,三生万物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으며, 3은 만물을 낳는다)”라고 쓰여있다. 3에 이르자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끝없이 크다는 의미만을 나타내고 있다. <조귀논전(曹刿论战)>에서는 “一鼓作气,再而衰,三而竭 (북을 치는데, 첫 번째는 사기를 일으키고 두 번째는 사기를 쇠락시키며, 세 번째는 사기를 다하게 된다)”라고 쓰여 있다. 그럼 4는 없는가? 없다. 민간에도 ‘一而再,再而三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재삼 재사)’라는 말이 있는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1~2번의 용서는 가능하나 3 번째는 참을 수 있는 극한에 이르게 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들은 ‘再三(재삼)’강조라고 하지, ‘再四(재사)’ 강조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三’으로 말 만들기를 좋아한다. 또한 ‘3’을 얘기하면 모든 숫자를 얘기한 것과 다름없다 생각한다. 이런 현상들은 중국인들의 습관에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쌍수와 짝수, 정수 5와 10을 좋아하는데, ‘3’은 기이한 숫자로 여겨 예부터 안 좋은 일들에 쓰여졌다. 이렇게 오랜 시일이 지나 ‘3’이 들어간 성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게 되고, 긍정적 의미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고사성어
智汇成语
请君入瓮(청군입옹, qǐng jūn rù wèng; 제가 놓은 덫에 치이다)
당(唐) 무측천(武则天)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 황제이다. 그녀는 통치를 위해 몇 명의 잔혹한 신하들을 임용했는데, 그중 가장 악독한 신하로 주흥(周兴)과 내준신(来俊臣)이 있었다. 그들은 모함과 고자질, 참혹한 형벌로 정직한 문무 관리들과 평민들을 살해하였다.
어느 날, 주흥이 구신적(丘神绩)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다는 상서가 올라왔다. 무측천은 크게 노하여, 내준신에게 이 일을 엄밀히 조사하라고 책령하였다. 내준신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주흥은 교활하고 간사한 자이므로, 한 통의 밀고서로 그의 잘못을 인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결과를 찾아내지 못하면 태후가 나에게 죄를 묻을 터, 이리 되면 나조차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내준신은 반 나절 동안 고민 후 마침내 묘책을 강구해냈다.
그는 주안상을 푸짐하게 준비하게 한 후, 주흥을 청하였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워갔고, 술이 수 차례 돌자 내준신은 탄성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보게, 내가 안건을 처리함에 있어 범인들이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네. 자네라면 어찌하겠는가?” 주흥은 자신있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해보게! 큰 항아리를 찾아내 주위에 불을 피워놓고 범인을 항아리 속에 들어가게 하게. 생각해 보게나. 어떤 범인이라도 자기의 잘못을 술술 불지 않겠는가?!” 내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흥이 말한 것처럼 큰 항아리를 가져오라 명한 후, 항아리 주위에 불을 지피게 했다. 그는 주흥을 향해 “궁 안 어떤 자가 자네가 반란을 도모 중이라고 밀고하였네. 위에서는 나에게 이를 엄밀히 조사하라 명하셨지. 미안하네만, 지금 자네가 항아리에 들어가줘야겠네”라고 말했다. 주흥은 이 말을 듣자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것이오. 내 죄를 인정하오.”
이 고사는 <자치통감·당측천황후천수2년(资治通鉴·唐则天皇后天授二年)>에 실려 있다. 고사성어 ‘请君入瓮’은 어떤 이를 다스릴 때 그 사람의 방법으로 본인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감상
品读
qián táng hú chūn xíng
钱塘湖春行(전당호춘행)
bái jū yì (táng)
白居易(唐)
gū shān sì běi jiǎ tíng xī, shuǐ miàn chū píng yún jiǎo dī.
孤山寺北贾亭西,水面初平云脚低。
jǐ chù zǎo yīng zhēng nuǎn shù, shuí jiā xīn yàn zhuó chūn ní.
几处早莺争暖树,谁家新燕啄春泥。
luàn huā jiàn yù mí rén yǎn, qiǎn cǎo cái néng mò mǎ tí.
乱花渐欲迷人眼,浅草才能没马蹄。
zuì ài hú dōng xíng bù zú, lǜ yáng yìn lǐ bái shā dī.
最爱湖东行不足,绿杨阴里白沙堤。
<현대적 풀이>
서호 가를 걸으며 고산사(孤山寺)의 북쪽에서 가정(贾亭)의 서쪽까지 이르니, 새 봄 맞은 호수면이 제방 높이만큼 찼다.
뭉게뭉게 흰구름은 호수면 물결과 연이어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룬다.
몇몇 철 이른 꾀꼬리는 햇볕을 향해 뻗은 따스한 가지를 향해 날아드네. 새로 찾아온 제비는 뉘 집으로 드는가? 봄 흙을 주둥이에 머금고 새 둥지를 짓네.
흐드러지게 핀 형형색색 봄 꽃이 사람의 눈을 점차 유혹하고, 하늘하늘 봄 풀이 이제 막 말발굽을 가릴만큼 자라났다.
서호 동편의 미경이 가장 마음에 들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할성 싶으면 푸른 버드나무 아래 멋들어진 백사제(白沙堤)를 거닐어 본다.
<해설>
전당호(钱塘湖)는 오늘날 항저우(杭州) 시후(西湖)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좋은 기후와 수려한 산수, 멋들어진 정자와 누각으로 중국 내 이름난 명소로 꼽히고 있다. 당송 이래 서호(西湖)를 읊은 시편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서호라면 우리는 자연스레 소식(苏轼)의 저 유명한 “서호를 서시(西子, 춘추 시대의 월 나라 미인)에 비유한다면, 짙은 화장과 옅은 화장이 다 잘 어울린다” 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된다. 백거이의 본 시를 음미하고 나면 슬쩍 눈길을 보내며 웃음 짓는 서시를 본 것 같다.
중국 당대 유명한 시인 백거이는 소년 시절에 항저우(杭州)에 대한 동경이 대단했다. 당 목종(穆宗) 장경(长庆) 2년(822) 가을, 그는 충저우(忠州)자사(刺史)에서 항저우자사로 이임하게 되면서 꿈에 그리던 항저우를 찾았다. 백거이는 항저우에서 역임한 600일 동안 민중을 동원해 둑을 쌓고 우물을 파는 등 적지 않은 공로를 쌓았다. 한편 시후의 산수를 마음껏 유람하기도 했다. 이때 시후의 풍경을 읊는 시편을 많이 남겼는데 <전당호춘행(钱塘湖春行)>이 그중 하나이다.
시인은 고산, 가정에서 시작해 호수 동편을 지나 백사제(白沙堤)에까지 이르렀다. 이 길을 걸으며 천당 같은 풍경 속에서 봄을 맞은 꾀꼬리의 지저귐과 제비의 춤을 감상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아무리 보아도 족하지 않은 마음에 백사제를 따라 걸으며 버드나무의 녹음 아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귓가에는 여전히 세간만물이 함께 연주하는 봄의 찬미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때 마음 속에는 저절로 자연의 융합이 만든 절묘함을 가득 담은 아름다운 시가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