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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통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말하다

발표일:2009년11월27일  출처:《금교》2009년10월  작자:글/공흔수  

    “촬영이 가진 독특한 매력은 바로 오늘 찍은 뉴스가 내일 역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60년의 촬영경력을 가진 천즈핑(陳之平)씨의 말이다.
    천즈핑씨는 산둥성 촬영가협회 초임비서장이며 현재 산둥성 촬영가협회주석단의 주석을 맡고 있다. 그의 촬영사업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87세가 된 천즈핑씨는 여전히 정정하고 목소리도 쩡쩡거렸다. 60년 동안 그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가 나고 자란 상하이, 생활과 일을 한 지난, 베이징 등 도시의 변천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거의 노랗게 바랜 사진을 한 장 한 장 다시 꺼내보는 그의 눈은 활력과 열정, 희망으로 넘쳤다.

상하이의 첫 번째 국경경축행사 증인
见证上海首个国庆
    1922년, 천즈핑씨는 상하이 교외인 난샹쩐(南翔鎭)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 1944년, 상하이진강공사(上海金刚公司)에 입사한 후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민즈신원(民治新聞)전문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사이 상하이는 해방을 맞게 되었다.
    1949년 7월, 천즈핑씨는 중국공산당이 상하이에 설립한 뉴스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혁명간부학교인 상하이화둥신원학원(上海華東新聞學院)에 등록을 했다. 공부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인생경험을 하게 되었다.
    1949년10월1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날로 그는 상하이인민경축퍼레이드에서 실습취재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막 해방된 시기로 전쟁의 흔적도 아직 남아 있고 도시에서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그날은 가는 곳마다 해방을 경축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0 여 미터 높이의 행사장무대에 위인 4명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중간에 마오쩌둥(毛澤東)과 주더(朱德)의 초상화가 놓였고 스탈린과 쑨중산(孙中山)의 초상화는 양쪽에 나뉘어 있었다. “나는 대열 사이를 누비면서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오후1시부터 시작하여 저녁9시에 끝나서 집에 돌아갔지요. 그건 내가 화둥신원학원에서 공부한 후 처음으로 한 실습취재였고 그렇게 장관한 군중경축장면은 내가 처음에 본 것이었습니다”라고 천즈핑씨는 말했다. 자료에 따르면 그날 전체 상하이시에서 경축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은 백 만 명으로 퍼레이드는 1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즈핑씨는 졸업을 하고 베이징중앙인민정부 뉴스본부 뉴스촬영국에 배치되어 상  하이를 떠났다. 그는 그때 상하이를 떠나고 나서 장기간 타향에서 살고 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늙으면 고향생각이 더 간절해진다고 한다. 노년의 천즈핑씨도 아내와 함께 몇 차례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린 시절 추억속의 마른 나무, 자갈길, 오래된 흙집은 그대로였지만 눈 앞에 보이는 현대식 상점, 투명한 오피스건물, 무성한 가로수, 넓은 도로, 아파트와 현대화된 패션들이 옛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했다.

천양지차인 지난의 과거와 현재
今昔济南 天壤之别
    1954년 말에 천즈핑씨는 신화사(新華社) 산둥(山東)지사로 발령이 나서 초임 전직촬영기자를 맡게 되었다. “내가 처음 산둥에 왔을 때 농촌에 가서 촬영취재를 주로 했기 때문에 지난에 머문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1963년에 두 번째 왔을 때부터는 지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나에게 4,50년 전에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을 건넸다.
    이것은 약5,6미터 남짓 되는 흙길 사진으로, 길에는 행인과 마차가 드문드문 있고 길 양편에는 높이와 굵기가 다른 구불구불한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구식 전주가 몇 개 서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웃으면서 또 다른 칼라사진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칼라사진은 가드레일로 분리된 쌍방향 6차선도로에 여러 브랜드의 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고 그린벨트로 분리된 비자동차길에는 수많은 오토바이, 자전거, 행인들이 질서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뚝 솟아 있는 고층건물들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마음껏 매력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원래 이 두 장의 사진은 천즈핑씨가 동일한 위치에 서서 동일한 각도로 다른 시기에 촬영한 지난 뤄위엔(濼源)대로(원명 징치루, 經七路)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었다.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젊은 청년에서 노인으로 변했는데 엄청나게 낙후되었던 지난은 더욱더 패기가 있어졌습니다” 천즈핑씨는 천양지차의 두 사진을 보면서 감개가 무량했다.
    그가 정리한 지난에 관한 사진 중에서 붉은 색을 주색조로 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1959년 10월1일, 천즈핑씨는 산둥성 및 지난시에서 개최한 건국10주년경축대회에 참가했을 때, 웅장한 경축퍼레이드장면을 촬영한 것이었다.
    “당시 지난의 ‘팔일강당’은 유명한 집회장소였습니다. 그 당시의 주변 건축물은 현재와는 많이 달랐지요” 천즈핑씨는 사진을 가리키며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늘날, 크고 견고한 팔일입체교차로는 2층으로 되어 있어 두 공간의 차량 흐름을 책임지고 있으며 각 방향의 교통을 소통시키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 위치에는 낡은 옛날의 팔일강당이 있었고 그 앞쪽은 평평한 광장이었다. 그날 경축대회의 무대는 팔일강당 앞에 설치되었고 무수히 많은 남녀청년이 조를 이루어 보조를 맞추며 무대를 통과해 걷고 있었으며 경축대회장은 온통 기쁨과 활기로 넘쳤다.
    이제 옛 사진 속의 청년들은 대부분 이미 환갑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청춘은 사진 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다.

베이징에 관한 기억
北京的记忆
    “오늘날, 사람들은 크고 아름다운 베이징시단(北京西单)광장에 서 있고, 고층건물의 숲, 차량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광경들을 볼 때 4,50년 전의 시단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천즈핑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자료상자에서 시단 풍경의 옛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그것은 60년대 초, 그가 지난에서 베이징신화사 촬영부로 귀환한 후, 당시 시단최고의 건축물이었던 창안(長安)대극장 건물 꼭대기에서 찍은 것이었다. 먼 곳을 바라보면 기복이 있는 산맥이 안개에 뒤덮여 있고 고층건물 몇 동이 끝없이 이어지는 단층집 중간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창안대로의 교통도 별로 혼잡하지 않고 자전거도 많지 않았다. “노면전차는 당시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이 되면 동료들이 나를 데리고 노면전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천즈핑씨 아직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은 슈퍼마켓이나 세계적인 놀이공원도 없었고 서양식 바나 현대적인 클럽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들이 간 곳은 고전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치엔먼(前門)대중오락청이었고 곡예(曲藝, 지방색 짙은 각종 민간 설창 문예)와 단현을 들었으며 죽방울 돌리기와 제기차기, 마술공연을 보았다. 꼬부랑길같은 다자란먼쾅(大栅栏门框)골목에서 양고기를 먹고 셴위(鮮魚)골목에서 차를 마시면서 호우바오린(侯寶林)의 만담을 들었다. 고도(古都)인 베이징 특유의 물정을 마음껏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963년 국경대퍼레이드의 추적촬영에 참가했다. “당시의 광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천즈핑씨는 흥분해서 당시 국경경축행사 상황을 설명하였다. 천안문광장은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오색의 꽃으로 뒤덮였고 십 여 개의 국경을 찬양하는 표어가 걸린 선홍색의 애드벌룬이 파란 하늘 위에 띄워져 있었다. 80 여 개 국가에서 온 2천 여명의 귀빈들은 참관대를 가득 메웠다. 거대한 퍼레이드대열이 수십 개 조로 나뉘어 넓은 실크로 만든 오색리본처럼 시원스럽게 움직이며 천안문으로 몰려 들었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마오주석 만세!”를 외쳤으며 마오쩌둥은 성루에서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인민 만세!”라고 소리쳤다. “나는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멋진 순간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봐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라고 천즈핑씨는 말하면서 전문적인 촬영동작을 몇 동작 보여주었다.

(본문 사진은 천즈핑 씨가 제공한 것입니다.)
(鞏欣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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